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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ll we dance? - 병원장님 기고

2021.06.05 13:03

admin 조회 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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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글은 윤성용 병원장님이 전국사회인검도대회 기념간행물에 기고하신 글입니다.

병원장님은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검도부 주장으로 전국대회와 서울시대회에서 

10여회의 우승을 차지하였고, SBS전국검도왕대회에 서울시 대표로 출전한 바 있습니다.

현재는 고대검우회 소속의 선수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Shall we dance? 

 


 

                                                                                윤성용(4)
 

고대검우회,
 

대한검도회 국가대표 팀닥터
 


 

“ 검도에서 상대방과 인사를 하고 칼을 빼서 중단을 하고 마주선다는 것,
 

그건 어찌 보면 “Shall we dance?” 하면서 손을 내미는 동작과 다를 바가 없어.
 

자신보다 기량이 떨어지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를 제압하려 하지 말고
 

그와 함께 춤을 추듯겸손하고 부드럽고 온화하게 어우러지려 해봐.
 

춤을 잘 추는 사람일수록 서투른 사람을 능숙하게 인도해서 상대가 무안하지 않게 하잖아.

검도는 춤이야
 


 

내겐 절친한 선배이자 친구가 한 명 있다.
 

그는 전자공학과 85학번이고 난 의대 86학번으로그는 내게 고대검도부 일년 선배다.
 

난 재수를 했다나이는 나와 동갑이다생일로만 치자면 내가 한달 정도 형님이다.
 

그러나 그에게 난 형이라고 부른다그렇지 않으면 맞...
 

가끔 운동하고 나서 그는 말한다.
 

네가 내 나이 돼 봐라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면서 히죽 웃곤 한다.
 

학생시절그는 참 검도를 이상하게 했다.
 

정말 독특했다.
 

자칭 일명 폴짝머리라는 게 있었다.
 

중단을 하고 있다가 제자리에서 폴짝 하고 튀어 올랐다가 가라앉으면서 머리를 치는 동작이었다.
 

그 이상한 엇박자 머리치기 동작에 사람들이 허망하게 당하곤 했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리듬, ‘당다라당당 당당 당다라당당당이라는 게 있었다.
 

바로 그 자를 쓴 일명 당나라 칼의 대가였다.
 

호쾌하게 이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잘 지지도 않았다.
 

그가 4학년이던 88나와 고대검도부로 추계연맹전에 함께 나가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코 잘한다라는 소리를 듣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는 참 우직했다.
 

졸업하고 삼성전자에 입사해서도 그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미국에 일년 남짓 출장을 갔을 때도 그는 검도를 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에게서 당나라 리듬이 사라지고 있었다.
 

지저분한 수비동작들이 사라지고폴짝폴짝 들뜨던 중심은 가라앉고 칼이 묵직해져 갔다.
 

그런데시합에 함께 나가면 평소 실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져버리곤 했다.
 

함께 출전했던 크고 작은 몇 개의 대회에서 그는 구멍이었다.
 

시합이 끝나면 나를 포함해서 선수들 몇 명이 뒤풀이를 할 때면 그는 늘 집중성토를 당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나만 그를 놀려대면서 다른 사람을 선동했다고 한다).
 

그런데 후배인 내가 아무리 놀리면서 소위 깐죽거리더라도 그는 결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자기는 정말 검도를 사랑하고 더 사랑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매번 시합 후면허름한 선술집에서 새벽녘까지 마셔댔다.
 

기쁨과 좌절분노 또는 체념동감과 공감차분한 복기와 반성독려,
 

그리고 때로는 만끽과 광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감정을 그와 늘 함께 했다.
 

그러다가, 1996년 사회인대회 청년부에 함께 출전했다.
 

그는 주장나는 부장이었다결승전 까지 갔다.
 

주장전을 앞두고 승부는 2-2, 판수까지 같았다.
 

그는 고대검우회 주장다웠다.
 

묵직하고 깔끔했다그림같은 허리치기로 이겼다.
 

우리팀 선수들은 주장인 그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난 그때 열광의 그 순간을 틈타 그의 뒤통수를 주먹으로 마구 때렸다.)
 

그게 우리의 졸업 후 첫 우승이었다.
 

그날 우리 멤버들의 기쁨월드컵 우승보다 못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소중한 것 하나를 덤으로 얻었다.
 

그건 그의 당당함과 자신감이었다나도 그 이후로는 그를 놀려대지 않았다.
 


 

그 이후나는 결혼하고 레지던트 과정에 들어갔고 4년간 검도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2002년부터 다시 사회인 대회에 매년 함께 출전했다.
 

우리 고대 검우회 멤버들에게 스스로 강팀이라는 자부심은 있었다.
 

그러나 늘 8강 정도에서 탈락을 했다. 2005년은 2회전에서 탈락했다.
 

2006년 장년부 사회인 대회 결승에 올랐다그는 주장나는 부장이었다.
 

결승까지 전승을 했던 나는 통쾌한 머리를 맞고 지고 말았다.
 

하필 TV 중계까지 되고 있었다. OTL
 

2-2, 주장전에 승부가 걸렸다당연히 다들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나 천연덕스러웠고, 이기는 게 연한듯 당당했고, 그렇게 이겼다.

 

('당' 이라는 글자는 그에게 참 잘 어울린다 ^^)

 

두번째 우승기를 우리는 그렇게 함께 들었다.

 

무려 10년만에야 가능했던 이 전국대회우승,

 

이 우승이 우리에게 주었던 그 뭉클했던 기쁨은 표현할 길이 없다.

 

그리고 3년 후그는 부장으로 나는 중견으로 중년부에서 우승을 했다.
 

예선부터 결승까지, 7번의 시합부장에서 모두 끝났다모두 그가 마무리 했다.
 

우리가 처음 함께 우승했던 20여 년 전의 지지만 않으려던 그 당나라칼
 

어느 누구랑 해도 당당하게 맞서는전혀 다른 이라는 글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세월이라고 불러도 좋을 시간 동안,
 

그의 성장과 성숙을 보아왔고 함께 했고 나이 들어감을 함께 즐기고 있다.
 

그는 늘 겸손하게 나에게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고 말을 한다.
 

(그래도 자신을 형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내가 맞는 건, 25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천재성은 감탄을 일으키지만 인격은 존경을 불러일으킨다고,
 

천재는 찬사의 대상이 되지만 인격자는 신봉의 대상이 된다고 했다.
 

그렇게 꾸준하고 겸손하게 정진해온 그는 이제 고대검우회에서 최고수준의 칼이 되어있다.
 

어떤 고수를 만나든 그가 보여주는 중단과 대등한 겨룸 그리고,
 

그 묵직한 검기에 어울리는 그의 사람됨은 내겐 부러움과 존경심마저 일으킨다. .
 

언제부터인가나는 그와 함께 시합에 나가는 것이 기다려진다.
 

나는 늘 그의 앞 순위에서 뛰어왔고 앞으로도 아마는 그럴것이다.
 

나는 확실한 승리로 그에게 심적인 편안함을 주는 것에 늘 도전하고 싶다.
 

내 앞에서 뛰는 내 아우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렇게 25년 동안 끈끈하게 이어져 온 것이 현재의 우승 멤버이다.
 

지금까지 내가 말한 가 언젠가 내게 한 말이 저 “Shall we dance?” 이다.
 


 

스타벅스 CEO인 하워드슐츠 회장의 말 중에 이런 것이 있다.
 

“ 승리의 결승점에 혼자 도달하는 것은 공허하다.  
 

최고의 성공은 승리자들을 이끌고 함께 정상을 정복하는 것이다.”
 

단체전에서의 우승의 기쁨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한다.
 

간절히 열망하던 우승의 순간 함께한 사람들과 나누는 감동과 기쁨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랴.
 

또 개인전이든 단체전이든 우승의 순간은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는 분명하다.
 

그러나 우승 멤버들과 그 환희의 순간을 함께 추억하고
감사하며 행복해하는 시간을 따져보면,

 

단체전의 기쁨과 소중함은 개인전의 몇 제곱이 될지 나는 짐작을 못하겠다.
 


 

이번 2010년 사회인 대회에 중년부로 출전한다.
 

이네들과 함께 이루고 싶은 바램과 꿈이 있다.

바램이라면 내가 50대가 될 때까지 우리 팀이 계속 우승하는 것이다.
모두 우승하면 7연패이다.

그리고 , 50대 이상이 출전하는 노장부에서도 이들과 함께 우승’ 하기를 바란다.
 

그 때까지 우리 멤버 모두인생에서 검도 수련에서 그에 합당한 자격이 되어있기를 바란다.
학생시절 우승청년부장년부중년부까지 지금의 멤버들과 우승을 함께 해왔다.

 

노장부에서의 우승을 추가 한다면, 20 대부터 50대까지 모든 부문에서 우승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세월과 함께한 우승의 기록검도인생의 그랜드슬램이다. 이것은 꿈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검도수련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이고, 
 

자기가 직업으로 하는 일에서 일정수준의 안정성을 유지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라고 불려도 아깝지 않다.

나는,우리는 그 꿈을 간절히 열망한다.


 

그리고  나와 그를 비롯한 우리 멤버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자세이다.
 

검도에 있어 깨끗한 동작을 의미하는 자세이기도 하지만,
 

검도를 임함에 있어서의 ‘attitude’를 의미하기도 한다.
강하면서 부드러워야하고 당당하면서 겸손해야하고,
승리에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승리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고자 해야한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shall we dance’ 이다. 

 

우리는 검도 이야기를 할 때면 늘 이렇게 춤 이야기를 한다.
 

한판 출까?”
 

그렇게 어우러져 어루만지는 춤을 추며 그들을 느끼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춤을 다 추고 나서 그들과 함께하는 막걸리 뒷풀이를 좋아한다.
 

검도 이야기에 난데없는 이라는 단어는 생경하고 어쩌면 불경스러운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나는 오늘그와 전화통화하면서 이야기 한다.
 


 

“Shall we d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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